2026년 9월 11일

웃기는데, 오래 남는 문장들

명언이라고 하면 대개 근엄한 얼굴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오래 살아남은 문장들을 모아 보면 뜻밖에 농담이 적지 않습니다.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말은 결국 한 번 듣고도 기억에 남는 말이고, 웃음만큼 기억에 잘 달라붙는 것도 없기 때문일 겁니다.

비틀어서 말하는 사람들

나는 유혹만 빼고는 무엇이든 다 물리칠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첫 막에서, 윈더미어 부인에게 은근히 구애하는 멋쟁이 달링턴 경이 하는 대사입니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다가 끝에서 스스로를 무너뜨립니다. 와일드는 이런 뒤집기의 명수였고, 그의 문장 중에는 웃다가 멈칫하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진실이란 순수한 경우는 드물고, 단순한 경우는 결코 없다.

오스카 와일드, 〈진지함의 중요성〉

이 대사를 하는 알저넌은, 귀찮은 약속이 생길 때마다 "병든 친구 번버리"를 핑계로 빠져나가는 인물입니다. 그런 친구는 애초에 없습니다. 상습적인 거짓말쟁이가 진실에 대해 가장 정확한 말을 한 셈이지요.

결혼하라,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마라, 그래도 후회할 것이다.

키에르케고르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1843년에 낸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이 말은 한참 더 이어져서, 세상의 어리석음을 비웃어도 후회하고 슬퍼해도 후회한다는 식으로 끝없이 뻗어 갑니다. 그런데 그는 이 책을 내기 불과 한두 해 전, 사랑하던 약혼녀 레기네 올센과의 약혼을 스스로 깨뜨렸습니다. 그 사정을 알고 읽으면 농담이 조금 덜 웃깁니다.

종교의 오류는 위험하지만, 철학의 오류는 그저 우스울 뿐이다.

데이비드 흄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흄은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삼을 줄 알았습니다. 스물일곱 살에 낸 첫 책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 대해, 그는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쓴 짧은 자서전에서 "인쇄기에서 나오자마자 죽은 채로 태어났다"고 적었습니다. 거의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지금 그 책은 서양 철학의 고전으로 꼽힙니다.

웃음을 편드는 문장들

사람은 신의 놀잇거리로 지어졌고, 그것이 사람의 가장 좋은 점이다.

플라톤

근엄함의 대명사 같은 플라톤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쓴 책 〈법률〉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사람의 일은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여길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말 끝에, 그러니 삶을 가장 아름다운 놀이로 채우며 살라고 이어 갑니다. 노년의 철학자가 내린 결론치고는 꽤 가볍고, 그래서 더 믿음이 갑니다.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은 스프링이 없는 마차와 같다, 길의 모든 돌에 흔들린다.

헨리 워드 비처

19세기 미국의 설교가 헨리 워드 비처의 말입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유머를 장식이 아니라 충격을 받아 주는 장치로 본 것이죠. 길은 어차피 울퉁불퉁하니, 필요한 건 평평한 길이 아니라 스프링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농담 한마디로 20년을 잃은 사람

마크 트웨인의 소설 〈얼간이 윌슨〉에는 농담 한마디 때문에 인생이 꼬인 사람이 나옵니다. 젊은 변호사 데이비드 윌슨은 미시시피 강가의 작은 마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끄럽게 짖어 대는 개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저 개의 절반이 내 것이면 좋겠다고, 그러면 내 몫의 절반을 죽여 버릴 수 있을 테니까.

마을 사람들은 이 농담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개를 반만 죽이면 나머지 반은 어쩌려는 거냐며 그를 바보로 결론 내렸고, 그 뒤로 그는 20년 넘게 "얼간이 윌슨"으로 불리며 변호사 일감 하나 제대로 얻지 못합니다. 트웨인은 이 소설의 장마다 윌슨이 몰래 써 둔 달력 문구를 달아 두었는데, 하나같이 그 마을 사람들은 못 알아들었을 법한 문장들입니다.

습관은 습관이라 창밖으로 던져 버릴 수 없다. 한 계단씩 살살 달래어 내려보내야 한다.

마크 트웨인

트웨인은 이 달력이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3년 뒤에 낸 여행기 〈적도를 따라서〉에서도 장마다 "얼간이 윌슨의 새 달력"을 달았습니다.

진실이 소설보다 기이한 이유는, 소설은 그럴듯해야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아서다.

마크 트웨인

웃음에도 선이 있다

웃음을 편드는 문장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처세의 달인 그라시안은 웃음의 쓸모를 인정하면서도 그 선을 분명히 그었습니다.

늘 농담만 하는 사람의 진담은 아무도 듣지 않는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농담을 견디되, 남을 놀리지는 마라.

발타자르 그라시안

남의 농담은 웃어넘길 줄 알되, 남을 웃음거리로 만들지는 말라는 것. 그리고 그는 남들이 비웃는다고 너무 마음 쓰지 말라는 말도 남겼습니다.

세상의 절반은 나머지 절반을 비웃는다. 남의 웃음에 너무 무게를 두지 마라.

발타자르 그라시안

2천3백여 년 전 맹자는 같은 이야기를 싸움터에 빗대어 했습니다. 전쟁이 붙자 갑옷을 버리고 달아난 병사 가운데, 오십 걸음에서 멈춘 자가 백 걸음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면 어떻겠느냐고. 우리가 아는 "오십보백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오십 보 달아난 자가 백 보 달아난 자를 비웃는다.

맹자

웃음은 가벼워 보이지만 가볍게 다루기는 어렵습니다. 스스로를 향할 때는 너그러움이 되고, 남을 향할 때는 쉽게 칼이 됩니다. 오래 살아남은 농담들이 대개 자기 자신을 비트는 쪽이라는 건, 어쩌면 우연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명심✦명언"에는 유머 주제를 비롯해 여러 주제에 이런 문장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매일 아침 받는 한 줄이 가끔은 웃음이어도 괜찮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