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을 가르치고, 플라톤이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쳤습니다. 한 세기 남짓 사이에 스승에서 제자로 곧장 이어진 세 사람이 서양 철학의 출발점이 된 셈이죠. 흥미로운 건 셋의 말투가 저마다 꽤 다르다는 점입니다.
소크라테스 — 모른다는 것에서 시작하기
소크라테스는 직접 쓴 글을 한 편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말은 전부 플라톤을 비롯한 제자들의 기록을 통해 전해진 것이죠.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말"이라고 할 때는 늘 약간의 여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나타나는 주제는 분명합니다.
지혜의 시작은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아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무지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인간에게 살 만한 가치가 없다.
모른다는 자각에서 출발하라는 이야기는 공자의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과 놀랄 만큼 닮았습니다. 비슷한 시기, 서로 만난 적 없는 두 문명에서 같은 결론이 나온 셈이죠.
플라톤 — 배움은 밀어 넣는 것이 아니다
플라톤은 스승과 달리 방대한 글을 남겼고, 아테네에 아카데메이아라는 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문장에는 가르치는 일에 관한 것이 유독 많습니다.
억지로 밀어 넣은 배움은 영혼에 남지 않는다.
교육은 눈먼 눈에 빛을 넣는 일이 아니라 영혼을 돌려세우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
배움이란 없던 것을 채워 넣는 게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이 향한 방향을 바꾸는 일이라는 생각. 2,400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을 이야기할 때 여전히 인용되는 관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 중간을 찾는 일
아리스토텔레스는 앞의 두 사람보다 훨씬 현실적입니다. 이상적인 무엇을 말하기보다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따지죠. 그의 대표적인 개념인 중용(中庸)은 "적당히 하라"는 말이 아니라, 상황마다 알맞은 지점을 찾아내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탁월함은 지나침과 모자람 사이에 있는 중용이다.
화내기는 쉽다. 알맞은 상대에게 알맞은 만큼 화내기가 어렵다.
화를 내지 말라는 게 아니라, 알맞게 내기가 어렵다는 것. 이 구분이 아리스토텔레스다운 지점입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일을 해내는 방법에 대해서도 그는 명확했습니다.
옳은 일을 하며 옳은 사람이 되고, 용감히 행하며 용감해진다.
제비 한 마리가 봄을 만들지 않듯, 하루가 행복을 만들지 않는다.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나서 좋은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좋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그런 사람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하루 만에 되지 않는다는 것. 습관에 관한 가장 오래된 설명 중 하나입니다.
세 사람이 이어진 자리
소크라테스는 묻고, 플라톤은 방향을 돌려세우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반복하라고 말합니다. 스승의 질문이 제자에게서 방법으로 바뀌어 간 셈이죠. "명심✦명언"의 지혜·배움·균형 카테고리를 넘기다 보면 이 세 사람의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