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는 스무 편, 5백 장 가까운 짧은 글로 이루어진 책입니다. 그 맨 첫 장은 세 문장뿐인데, 첫 번째가 배움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가 친구에 관한 것입니다.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즐겁지 않은가.
공자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기쁨 바로 다음 자리입니다. 공자의 말을 모아 책을 엮은 제자들이 무엇을 맨 앞에 둘지 가볍게 정하지는 않았을 테니, 친구가 이 자리에 온 것도 우연만은 아니겠지요. 멀리서 찾아온 벗을 반기는 이 한 줄은 지금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건네는 인사로 쓰입니다. 고향을 멀리 떠나 사는 분이라면 조금 다르게 읽힐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하나의 나
서양에서 우정을 가장 길게 다룬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다룬 〈니코마코스 윤리학〉 열 권 가운데 두 권을 통째로 우정에 썼습니다. 그는 그 부분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친구가 없다면 아무도 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원문에는 "다른 좋은 것을 모두 가졌더라도"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재산도 명예도 건강도 있지만 친구가 없는 삶을 누가 택하겠느냐는 것이죠. 그러면서 그는 친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친구란 또 하나의 나 자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좋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대하듯 친구를 대한다는 뜻입니다. 친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은 사이. 그렇다면 그런 친구는 몇 명이나 있을 수 있을까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은 뜻밖에 현실적입니다.
친구는 많을수록 좋은 게 아니라 함께 살 만큼이면 넉넉하다.
아리스토텔레스그는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결국 누구의 친구도 아닌 것처럼 보인다고 덧붙입니다. 연락처에 수백 명이 저장된 요즘에 읽으면 조금 뜨끔한 대목입니다.
고르는 일, 그리고 믿는 일
친구를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옛사람들은 분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공자는 이로운 벗과 해로운 벗을 각각 세 부류로 나눴습니다.
곧은 벗, 미더운 벗, 아는 것 많은 벗은 유익하다.
공자해로운 쪽은 겉치레만 하는 벗, 비위만 맞추는 벗, 말만 번지르르한 벗입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과 곧은 말을 하는 사람 가운데 누가 곁에 있어야 하는지, 2천5백 년 전에도 답은 같았습니다.
친구로 삼기 전에 판단하고, 친구가 된 뒤에는 믿어라.
세네카세네카의 이 말은 친구 루킬리우스에게 보낸 세 번째 편지에 나옵니다. 루킬리우스는 어떤 사람 편에 편지를 보내면서 그를 "친구"라고 부르고는, 바로 다음 줄에서 그 사람에게 자기 일을 다 이야기하지는 말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세네카는 그 모순을 짚습니다. 믿지 못할 사람이라면 친구라 부르지 말고, 친구라 부를 사람이라면 믿으라는 것. 판단은 앞에서 끝내고, 믿음은 뒤에서 아끼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17세기 스페인의 그라시안도 같은 순서를 권합니다. 먼저 고르고, 고른 다음에는 곁에 두라고. 그는 벗을 "살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재산"이라고 부르면서도, 그 재산은 쓰려고 모으는 것이 아니라고 못 박습니다.
벗은 고르는 것이다. 아무나 곁에 두지 마라.
발타자르 그라시안벗은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힘들 때 드러나는 것
불행은 진정한 친구가 아닌 자를 가르쳐 준다.
아리스토텔레스짐을 나눌 사람을 곁에 두어라. 혼자 지면 무게가 두 배가 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좋을 때는 누구나 곁에 있습니다. 누가 친구였는지는 일이 틀어졌을 때 알게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런 뜻도 됩니다. 힘든 시기를 지나고도 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미 답이라는 것.
그리고, 돈 이야기
우정에 관한 문장을 모으다 보면 마지막에는 마크 트웨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소설 〈얼간이 윌슨〉의 장마다 첫머리에 주인공이 몰래 써 둔 달력 문구를 달아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우정은 거룩하고 달콤하며 한결같아 평생 가지만, 돈만 빌려 달라 하지 않는다면 그렇다.
마크 트웨인웃자고 한 말이지만 흘려듣기엔 아깝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아버지 폴로니어스가 아들에게 돈은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말라고 당부하며 댄 이유도 같았습니다. 빌려준 돈은 돈도 잃고 친구도 잃게 한다는 것이죠. 우정은 셈을 하지 않을 때 오래가고, 셈이 끼어들면 쉽게 금이 갑니다.
"명심✦명언"의 우정 주제에는 이런 문장들이 모여 있습니다. 오늘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면, 마음에 드는 한 줄을 골라 보내 보셔도 좋겠습니다.